면역력이 뭐길래

무거운 더위가 가시고 제법 서늘한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야외 활동을 해도 전처럼 땀에 젖지 않고, 실내에 들어서면 쿰쿰하게 올라오는 물비린내나 더운 숨도 더는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아요. 쾌적함을 만끽하려다가도 덜컥 걱정이 됩니다. 환절기마다 기승을 부리는 소소한 병마들과 늘상 다퉈왔기 때문이겠죠.

저처럼 잔병치레가 잦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꼭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면역력’인데요. 기침을 하거나, 코가 막힌다든지, 눈이 침침한 사람, 피곤한 사람, 뒷목이 뻐근한 사람, 속이 안 좋은 사람, 어지러운 사람, 심지어는 얼굴이 푸석해진 사람에게 하나같이 “면역력이 떨어진 것 같다“는 말을 합니다. 도대체 면역력이 뭐길래 이렇게 지고지순하게 성가실까 싶습니다.


면역력

사실 어린 시절, 병원에서 면역력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던 순간부터 저는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화창한 봄날 꽃가루에 눈과 코가 만신창이가 되어 병원을 찾았는데요. 의사 선생님께서 면역력이 떨어져 그런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안 아픈지 물어보면, 꼭 ‘잘 먹고, 잘 자고, 부모님 말씀 잘 들어라’ 하십니다. 의구심이 의심에 접어든 것이죠. 어쩌면 면역력은 원인을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울 때 둘러대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면, 당시에는 오히려 지나친 면역 반응으로 고생한 일이기도 하고요.

바이러스학과 면역학을 연구한 병리전문의 미네 소타로는 사실 면역력이라는 용어가 부적절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면역이 단일한 속성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세포가 이루는 네트워크이자 여러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일종의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면역 반응이 정상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외부에서 침입한 병균으로부터 감염에 취약해질 수 있고, 반대로 너무 활발하게 나타나면 알레르기나 자가면역질환처럼 불편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면역은 절대적이지 않고 반응 대상에 따라 달라지므로 높다거나 낮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것입니다.

감기를 예로 들어 볼까요?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성인은 해마다 두세 차례 감기에 걸리고, 어린이는 그보다 더 자주 걸립니다. 감기는 대체로 며칠에서 삼 주 사이에 증상이 개선되고요. 감기를 일으킨다고 알려진 호흡기 바이러스만 200종이 넘습니다. 감기에 특히 자주 걸린다면 과연 면역 반응이 강하게 나타나서일까요? 아니면 약하게 나타나서일까요? 그건 알 수 없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iN 매거진에서도 치료로 백혈구가 크게 감소한 경우처럼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면역을 높다거나 낮다고 말할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식약처의 면역력 증진 문구

마트나 약국, 쇼핑몰 등에서 건강기능식품 코너를 보면 너무나 쉽게 ‘면역력 증진’이라는 설명을 볼 수 있습니다. 미디어에서는 ‘암도 이기는 면역력’이라든지, ‘면역력을 높이면 약도 필요 없다’라든지 하는 문구도 심심찮게 보입니다. 식약처가 고시한 「건강기능식품의 기준 및 규격」의 홍삼 항목을 살펴보면, 기능성 내용에 “면역력 증진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이라는 표현이 들어 있습니다. 비단 홍삼뿐만 아닙니다. 인삼, 클로렐라, 알콕시글리세롤이 함유된 상어간유 등 상당히 이질적인 원료에도 면역력 증진 같은 표현이 사용됩니다.

건강기능식품에서 말하는 ‘면역력 증진’은 사람의 모든 면역 기능이 통째로 강해진다는 뜻이 아니라, 정해진 원료와 섭취량을 통해 특정한 기능을 회복한다는 의미에서 허용된 규제상의 표현에 가깝습니다. 면역력이라는 표현은 분명 모호한 구석이 있지만, 음식이나 영양소가 면역 기능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니까요. 영양소를 추가로 섭취해서 더 건강해진다기보다는 결핍된 영양분을 보충한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것이 오늘날 신경 써서 찾아 먹지 않으면 문제가 되는 성분을 가지고 면역력 강화 같은 표현을 쓰는 것입니다.

비타민 D가 대표적입니다. 비타민 D는 정상적인 면역 기능에 관여하는 필수 영양소입니다. 다만 비타민 D를 보충한다고 감기에 덜 걸린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일부 제품은 호흡기 감염 위험이 조금 줄어들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비타민 D 결핍이 있는 사람에게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하네요. 그러나 실증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효과도 더러 있습니다. 우리 몸에 분명 필요한 영양소이기는 하지만, 더 많이 먹을수록 면역력이 강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죠.

비타민 C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인이 평소 비타민 C 보충제를 먹는다고 감기에 걸릴 가능성이 크게 낮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주목할 점은, 평소 비타민 C를 꾸준히 복용한 사람은 감기에 걸렸을 때 증상이 금방 호전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감기 증상이 나타난 뒤에 먹어서는 일관적인 효과가 증명되지 않았다고 하네요.

마무리

면역력을 높이는 음식이나 약을 찾고 먹는 일은 무용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우리는 면역계를 특별히 강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해야 할 일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바람직합니다. 영양소가 결핍되지 않도록 식단에 신경을 쓰고, 충분히 자고,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입니다.

요즘 저는 특히 잘 자는 것의 중요성을 여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하루 4시간에서 6시간 정도 수면을 취했는데 당시에는 딱히 몸이 피곤하다고 느끼지도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꽤 오랜 기간에 걸쳐 아주 천천히 몸 구석구석이 고장 나고 있었던 겁니다. 가만 생각하면 아마도 시간이 아까워서 잠을 줄였던 것 같습니다.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졸리다고 잠을 자면 소는 누가 키우냐는 양으로요. 그렇게 십 년을 넘게 지냈는데, 머리도 나빠지고 잔병치레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어쩌면 잘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이 말이죠. 요즘에는 적어도 7시간 이상은 잠에 시간을 씁니다. 충분히 수면을 취하니까 비로소 느껴지는 바가 많습니다. 머리도 맑아지고, 기분도 전보다 나아진 게 실감된다고나 할까요. ‘앓아눕기 전에는 몸 귀한지 모른다’는 어머니 말씀이 떠오릅니다.

여전히 저는 건강을 유지하려면 챙겨야 할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골고루 먹고, 자주 움직이고, 햇빛을 쬐고, 제때 자야 하죠. 너무 오래 앉아 있었다 싶으면 가끔 일어나 주고, 지치면 누워서 쉬기도 해야 합니다. 하나씩 파고들자면 또 알아야 할 게 산더미죠. 이렇게 번거롭고 연비가 나쁜 존재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면역력’이라는 말에 쉽게 빠져든 것 같습니다. 마치 면역력 하나만 높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느껴지니 말입니다. 가만 보면 잘 먹고 잘 자라는 어릴 적 의사 선생님의 말이 아주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많은 일이 그렇듯, 특별한 지름길은 없는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