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way humanity

어디든 출퇴근 시간에 붐비는 것은 매한가지겠으나, 저녁 6시 30분에서 7시 사이 2호선 강남역의 인파는 그야말로 상상 이상입니다. 많으면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계단까지 이동객이 줄지어 있죠. 슬쩍 가장 긴 행렬의 맨 끝으로 자리를 잡으면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게 됩니다. 스마트폰 화면을 뚫어져라 보며 다른 사람들과 널찍이 떨어져서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두커니 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저 앞으로 가버리는 분도 있습니다. 그 모습이 고속도로를 달리는 총알택시에 견줄 만합니다. 얼마간의 기다림 끝에 지하철에 오르려는 순간에도 그들은 어디선가 나타나 한 끗 차이로 자리를 차지하곤 시선을 돌려버립니다.

마침내 지하철에 오르면 더 절망적입니다. 안 그래도 빽빽한 차내에서 우산이나 팔꿈치로 콕콕 건드리기도 하고요. 앞에 서서 낯선 숨결을 내뿜는 것도 괴로운데 기어코 통화를 하며 침을 튀기기라도 하는 날은 더러 서럽기까지 합니다. 물론 사과 한마디 없습니다. 때로는 특별한 인물들도 볼 수 있는데요. 붉은 낯으로 노약자석에 앉아 뭇 어르신들의 눈총을 한눈에 받는 청년 슈퍼스타, 난데없이 열차 바닥에 주저앉는 생존 전문가, 가방과 소지품으로 옆사람을 공격하는 특수폭행 빌런, 이들보다 더 드물게 조우하는 종교계와 정치계의 위대한 웅변가들까지… 교양을 지키는 다수의 사람들을 압도하는 존재감을, 이들은 가지고 있습니다.

매일같이 이들과 동행하다보면 전에 다녀온 일본이 종종 생각납니다. 일본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사람이 훨씬 붐비는 와중에도 누군가 내 영역을 침범하거나, 불편을 느낀 적이 없었거든요. 줄을 서서 기다릴 때도, 차량에 오른 뒤에도 독서실처럼 조용하고요. 무엇보다 함부로 타인을 만지거나 몸으로 밀지 않습니다. 생각에 잠기기 무섭게 누군가 등에 몸을 붙여옵니다. 아직 문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왜 이러는 걸까요? ‘급한 사정이 있겠지’ 생각하려고 해봐도 매일같이 마주하다보면 난감한 마음이 듭니다. 하루 중 가장 타인과 가까이 밀착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점점 멀어지는 공간인 것 같아요.


이대로라면 얼마 안 남은 인류애가 메말라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차를 몰고 근교에 다녀왔습니다. 코에 바람 좀 넣으려고 말이죠. 역시 남들 일할 때 노는 게 최고입니다. 연휴라 차가 막힐 것을 걱정했는데 더없이 쾌적하네요. 지나온 길목과 가게에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모처럼 휴가를 보내는 사람들이 꽤나 있는 것 같습니다.

퇴근시간에 걸리지 않으려고 조금 이르게 집으로 향하는데 차가 좀 막혔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정체되는 구간에 걸린 것이죠. 급할 것도 없는데 그 기회에 음악도 새로 고르고, 목과 어깨도 좀 풀어줬습니다. 늘어진 한 쌍의 브레이크등마다 하나의 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나에게는 오늘이 휴가였는데, 당신들은 어땠을지 궁금한 마음이 들었더랬죠.

이윽고 길이 뚫려 이동하는데 새삼 감탄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보다 커다란 차를 몰며, 사고 한 번 없이 일정한 흐름에 맞춰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게 느껴진 것이죠. 분명 이 중에도 성격이 급한 사람, 운전이 미숙한 사람, 오늘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은 사람 등 온갖 인간 군상이 있을 텐데 말입니다. 차선을 변경하려고 깜빡이를 켜면 슬며시 속도를 줄이며 앞자리를 내어줍니다. ‘고마워요’ 표시로 비상등을 깜빡이면, ‘천만에요’ 살짝 상향등을 쏴주고요. 좁은 골목길에서 마주하기라도 하면, 서로 먼저 가라고 전조등을 끄고 양보를 겨루기도 합니다.


인간은 정말 입체적입니다. 어쩌면 지하철에서 제가 가장 불쾌하게 느낀 몸으로 미는 행위를, 등 뒤에 선 그도 당한 것이 아닐까 깨닫습니다. 아마도 그에게 밀린 저 또한 누군가에게 불쾌감을 주었을 테고요. 안전한 내 공간이 저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필요하죠. 간혹 이를 본격적으로 침범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아마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것이 급하게 어딘가 가야만 하는 이유일 수도, 닳고 닳아 넝마가 된 인내심일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충분히 배려하고 조심한다는 것입니다. 단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기억나지 않을 뿐인 것이죠. 요즘들어 마음에 여유가 없었나봅니다. 누구도 저를 불쾌하게 만들려고 그런 것은 아닐텐데 말입니다. 앞으로는 조금 더 너그러워지기로 다짐합니다.